어느 시골길, 나무 한 그루 아래서 두 사람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기다리는 이는 ‘고도’(Godot)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가 누군지, 언제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종일 그를 기다린다. 그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서로 말을 건네며 지루함을 달래본다. 그리고 그들의 기다림에 한계가 올 때쯤 한 소년이 다가와 그가 내일은 꼭 올 거라는 전갈을 남기고 사라진다. 다음날 그들은 여전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다시 ‘고도’(Godot)를 기다린다. 그리고 또다시 소년이 그들을 찾아와 내일은 그가 꼭 올 거라는 소식만 전하고 다시 떠났다. 두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일 올지도 모를 ‘고도’(Godot)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이야기는 아일랜드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년~1989년)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라는 작품의 줄거리이다. 그는 여기에서 인생을 ‘기다림’으로 표현한다.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지를 말하는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삶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 ‘고도’(Godot)에 대한 기다림이라고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다 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을 떠올리게 된다. 반복되는 상황 속에 어쩌면 계속 기다리기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가 끝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씁쓸한 감정을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누군가는 마태복음 1장의 계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도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적으로는 부유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자녀를 긴 세월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또 절대 무너지지 않을 나라를 약속받았던 다윗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무색할 정도로 다윗 이후 2대 만에 나라는 분열되고 결국 이방 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고도’(Godot)를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 소식을 전해준 소년처럼 그의 후손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더 어두워져만 간다.
두 이야기가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사뮈엘 베케트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이야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는 기다림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의 이야기는 소망으로 완성된다. 실제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려 왔던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윗의 후손’이 오셔야만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에게는 그것만이 답이었다. 하나님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존재이시며 그분이 하신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 무언가를 기다리며 산다. 억압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자유를 기다리고,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회복을 기다리며, 현재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미래를 기다리며 산다. 그러나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는 모든 희망을 앗아간다. 죽음의 두려움은 모든 기다림을 허무하게 한다.
혹시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는가?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위해 우리의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견뎌오지 않았는가?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이 허무함과 절망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조차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한 절망의 늪에서 우리는 우리를 기다려 오신 그분을 만났다. 그리고 그분이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지루함과 고통으로 얼룩진 우리의 반복된 삶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기다려 오신 주님을 만남으로 우리의 긴 절망은 막을 내린다. 우리의 기다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인들은 완성된 기다림 속에서 또 다른 기다림을 이어간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며 산다. 모든 민족이 그분 앞에 무릎 꿇고, 그분의 다스림을 인정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통하여 세워지는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이 아주 작은 시골 마을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정하신 때에 이루어진 것처럼, 오늘도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이 희미해져 가고 다 끝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계속 이루어 가신다는 소망을 버리지 말자.
질문하며 배우는 마태복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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