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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배우는 마태복음/마태복음 01장

[마 1:1-17] 07 마 1:1-17의 계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3)

4. 직분을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의 계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계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 말고도 직분이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에 우리가 관심 있게 보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와 ‘왕’이라는 나라에서의 직분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히브리어로는 ‘마쉬아흐’(מׇשִׁחַ)로 헬라어로는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메시아’(Messiah)는 ‘그리스도’(Christ)와 같은 말이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나 왕, 선지자 등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 따라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이 제사장, 왕,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대제사장이시며(히 4:14-16),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며(요 17:2),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해 주시는 참 선지자이시다(요 8:38).


특히 계보에서 마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 중에 ‘왕’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은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라는 것과 모든 열방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마태복음 마지막 장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권한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마 28:18).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그분이 명령하시는 모든 말씀을 따르는 삶을 포함한다(마 28:19-20).

 

 

5. 빠진 이름들이 있다.

 

빠진 이름들이 있다는 사실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의 계보를 아브라함 이후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마태는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 세 명의 사람들을 생략했다. 또한 ‘요시아’와 ‘여고냐’ 사이에 ‘여호야김’도 빠져있다. 마태는 왜 이 사람들을 뺀 것일까? 그것은 이어지는 여섯 번째 특징을 보면 알 수 있다.


6. 열네 대로 나누고 있다.


계보를 읽는 독자들에게 아마도 이 부분이 제일 궁금할 것이다. 이전의 특징들에서 살펴본 것처럼 마태는 계보에서 몇몇 사람들의 이름을 빼면서까지 열네 대로 맞추려 하고 있다. 또한 열네 대로 구분하려면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42명이어야 하는데 41명이다. 물론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갈 때까지 그리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계산하면 열네 대가 맞다. 그렇다면 왜 열네 대를 반복해서 기록하는지 마태의 의도가 궁금하지 않는가? 마태는 왜 열네 대로 나누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마태복음의 계보가 왕국의 시작과 멸망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아브라함부터 시작되는 계보이지만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인 다윗이 중심이 되어 그 왕국이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는지를 말해주기 위해서이다. 즉, 눈으로 보이는 다윗의 왕국은 멸망했지만, 하나님께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왕국을 이새의 줄기와 뿌리에서 나온 다윗의 후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세우실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 그렇게 구분했다고 한다(삼하 7:16; 사 11:1, 10).
    

두 번째는 새 창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마태는 열네 대씩 셋으로 구분한다. 거기에는 히브리어의 완전수인 7이 6번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천지창조의 7일을 떠올리게 하는데 7세대를 6번 묶고 난 뒤 새 창조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7번째) 완성하셨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함이라는 주장이다(고후 5:17).
    

마지막으로 ‘다윗’이라는 이름과 관련짓는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를 가지고 수를 나타낸다. 그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그 단어가 지닌 뜻을 알파벳이 나타내는 숫자로 푸는 ‘게마트리아’(Gematria)라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것으로 보면 ‘다윗’(דוד)은 14가 된다.

다윗은 이 계보에서 14번째가 되고 다윗 자신의 숫자가 14이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마태가 열네 대로 나눈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윗을 소개할 때 ‘왕’이라는 직분을 표현하고 있으며 원어 성경으로 볼 때 1절에 ‘아브라함’보다 먼저 ‘다윗’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숫자에 능한 세리 출신 마태는 이 계보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왕이신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열네 대로 나누고 있다고 한다.

위의 세 가지 견해는 열네 대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다윗의 이름을 숫자로 표현한 해석이 더욱 타당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 열네 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초점을 맞추면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열네 대’라는 표현보다 그 계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하나님의 약속을 살펴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며, 모든 열방을 다스리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본문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다른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수고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더욱 분명하게 해 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주제를 놓칠 가능성이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이루지 못하는 연구는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연구를 통하여 사도들과 바울이 전했던 핵심을 놓치면 안 된다(행 28:31; 고전 2:1-2; 빌 3:8-9).

 

 

질문하며 배우는 마태복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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