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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02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실수인가?

먼저왕의 음성의 주 저자는 마태복음 2:1-12의 본문을 가지고 서문을 연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의로의 초대

“동방박사들 –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왕의음성 서론|

 

서문의 소제목에서 보듯이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동방박사들이 어디에서, 왜 왔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이들은 점성가들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점쟁이가 아니었다. 당시의 학문적 경향으로, 철학과 의학과 자연과학에 능통한 전문가들이었다. 당시는 별을 통해 세상을 이해했다. 별들이 일정한 궤도로 움직이며 우주의 질서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어느 날, 이들이 큰 별을 보게 되었다. 어떤 별을 보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BC 11년경에 핼리 혜성(Halley’s Comet)이 찬란한 빛을 내며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BC 7년경에는 밝게 빛나는 토성과 목성의 결합이 있었다. BC 53–2년에는 비정상적인 천문학적 현상이 있었다. 이때 고대 이집트력의 ‘메소리’(Mesori)라는 달의 첫날에 천랑성(天狼星, 항성 중에서 광도가 가장 강한 별)인 시리우스(Sirius)가 태양과 함께 떠서 매우 찬란히 빛났다. 지금 메소리 성좌(星座)는 ‘왕자의 탄생’을 의미한다. 당시의 점성가들은 이런 별의 출몰이 위대한 왕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왕의음성 서론|

 

그러나 그들이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를 소개하는 내용에서는 근거 자료의 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다. 물론 동방박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것보다 왜 왔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 실수?

 

저자는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그들의 실수라고 설명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박사들은 별을 보면서 이 세상에 큰 왕이 오심인 줄 알았다. 그래서 별을 따라 예루살렘이 있는 팔레스타인까지 갔다. 그런데 왜 이들이 엉뚱하게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갔을까? 태어날 왕이 당연히 왕궁에 있을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왕의음성 서론|

 

다시 말해 동방박사들이 가야할 목적지는 베들레헴이었는데 태어날 왕이 당연히 왕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박사들이 중간에 실수로 잃었던 별을 다시 보게 되어 그 별의 인도함을 받는다는 상상력을 동원한 설명을 한다.

 

그리고 중간에 실수로 잃었던 별을 보게 되어 다시 그 별의 인도함을 받는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다가 실수로 길을 잃었지만 다시 올바로 인도하심을 받을 때의 기쁨이다.   |왕의음성 서론|

 

더불어 저자는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간 것을 그들의 생각과 추측과 짐작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놓친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래서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자신들의 추측과 짐작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해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였는가’이다.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이들에게 별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들은 긴 여행을 마치고 베들레헴으로 가야 할 마지막 순간에 실수를했다. 자기들의 생각과 추측과 짐작으로 하나님의 뜻을 놓쳤다.   | 왕의음성 서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말씀으로 교정시키셔서 목적지까지 이끄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꿈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 박사들을 귀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이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올바르게 가게 되었다. 그리고 가는 도중에 그 별을 다시 만나 인도함을 받았다.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이들은 깨달은 바가 많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추측과 짐작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별을 따라 끝까지 가지 않은 점, 왕이 난 곳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작은 마을 베들레헴인 점,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인 점 등. 그리고 비록 실수했으나 하나님께서 이들의 마음을 아시고 말씀으로 교정시키시고 목적지까지 이끄셨다는 것도. 하나님은 꿈을 통해 말씀하셨다. 이들은 헤롯의 말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꿈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했다.   |왕의음성 서론|

 

| 뭐가 잘못된 거지?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이 말이 뭐가 잘못된 거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은 처음부터 저자가 성경 본문을 통해 풀어놓은 상상력의 보따리를 보고여기에 그런 비밀이 있었구나!’라고 무릎을 치며 마치 엄청난 비밀을 깨닫게 된 것처럼 즐거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목회자로서 이러한 해석이 성경을 더욱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 왜냐하면 박사들이 예루살렘 왕궁으로 간 것을 실수라고 말한다면 이방인들의 실수가 헤롯이 베들레헴과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유아들을 살해하게 된 원인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2:16). 실제로 저자는 그와 같은 해석을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방해되는 것

 

1. 자기 생각과 지식에 의지하여 추측하고 짐작하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의 추측으로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로 인해 2세 이하의 남아(男兒)들이 죽임을 당했다.   |왕의음성 서론|

 

그러나 마태복음은 그것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다고 전해주고 있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 2:17-18)

 

| 이방인이 알아보고

 

오히려 동방박사들의 예루살렘 입성은 마태복음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과 같이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자손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이방인이 먼저 알아보고 있다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 8:11-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말해주는 마태복음에서는 그런 이방인들을 귀하게 보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 8:10)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 15:28)

 

위의 구절들을 검토해 본다면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을 두고 실수했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그 놀라운 소식을 이방인에게 알리심으로 그것이 속으로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만을 위한 것( 3:9)이 아니라 애초부터 모든 이방인들에게 열려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 2:39)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공통된 약속을 통해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3)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사 11:10)

 

또한 마태복음은 1장부터 계보에 등장하는 이방 여인들을 소개함으로 구약성경으로 다시 돌아가 그들이 믿음으로 행했던 삶을 살펴볼 수 있도록 일관성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

 

| 자신이 경험한 것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동방박사의 예루살렘 방문을 그들의 실수로 보는 해석은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이 원래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려 하지 않고 자신이 경험한 것을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찾다 보니 일어나게 되는 오류이다. 즉 저자는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중요성을 뒷받침해줄 본문을 찾다 보니 성경이 말하지 않는 무리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해석은 현재 많은 설교자들을 통하여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각자가 받았다고 하는 비전들을 설득력 있게 성도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유혹을 나와 같은 목회자들은 항상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원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보다 확대와 축소 또는 변질 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목회자들은 늘 경계해야 한다. 설령 후에 목회자가 그것이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당시에 잘못 전달된 말씀은 그것을 잘못 전달받은 사람들을 향한 폭력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경험보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만

 

나는 신학대학원 재학 시절 이와 관련하여 설교학 교수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 본문에서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을 어느 정도까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예를 들어 본문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내면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지를... 물론 그때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대답은 예상한 대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다른 답이 있는지 궁금해서 질문했지만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 외에 다른 답은 없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성경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고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특별한 경험을 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경험만으로 성경 본문을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내가 복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더더욱 주의해야 하는 것은 우리 주위의 이단들도 그렇게 성경을 꿰어 맞추려는 시도들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를 포함한 많은 목회자들은 맡겨주신 영혼들을 말씀으로 잘 인도하기 위하여 본문이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럴듯하게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멈추어야 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머리말 이 글은 원래 쓰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왕의 재정 부흥회’가 주변 지역 교회에서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강사가 몸담고 있는 단체NCMN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왕의재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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