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예수님의 양은 어떤 음성을 듣는가?
특별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을 하는 자들을 보면 그것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신기하게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듣는지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공통점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한 개인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들은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을 때에도(창 6:13-21), 노아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가족들에게나 이웃들에게 떠들고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 6:22)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 7:5)
물론 성경이 그들이 한 모든 말을 담을 수 없는 것을 안다. 노아가 방주를 짓기 위해선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을 수 있다. 그러나 설령 그랬다 할지라도 성경은 우리에게 노아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다고만 알려 주고 있다. 성경에 근거 하려면 아무리 그럴듯해도 추측으로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은 오류가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도(창 12:1-3) 노아가 반응했던 것처럼 비슷하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 12:4)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창 22장) 아브라함은 그 누구에게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지 않았다. 모리아산으로 이삭과 올라갈 때도 이삭의 질문 앞에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셨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9)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애굽으로 내려가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도 그는 장인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거론하며 얘기하지 않았다.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출 4:18)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여 자신과 형제들의 미래를 알려주셨을 때도 하나님이 나에게 꾸게 하신 꿈이라고 부모와 형제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창 37:6-11)
심지어 그 꿈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에도 그 꿈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자신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높여드렸다.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 50:18-21)
그런데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너무 쉽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나님께서 꿈을 꾸게 하셨다고 들레며 다닌다. 예수님은 다니시면서 결코 그러지 않으셨는데...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 12:19)
| 성경의 초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잠시 생각해 봐야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고 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했다’, ‘따랐다’라는 말들로 표현했을까? 그것은 성경이 특별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가르쳐 주는 비법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 세상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인간은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 그 인간이 어떻게 타락해서 어떤 상태여 놓이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누구를 통해서 구원하실지,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을 부르시고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전하고 있는 거룩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성경 각 권의 저자들이 다른데도 그 모든 책의 주제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어떤 방법론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주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부분적으로 맞는다할지라도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분명 벗어났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된다. 오직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성경인 디모데후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8)
그러므로 성경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고 성경을 가지고 수많은 방법론과 이론들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멈춰야 한다. 오직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만이 드러나야 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 아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성경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하여 있다는 것을 또 다른 성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보라.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1-2)
위의 말씀을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소개한다. 그들이 들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그들에게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는가? 바로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이다. 그 아들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자신의 유일한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그의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하시는지라 (마 17:5)
제자들 중의 하나인 베드로는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을 듣기보다 예수님을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는 자신의 말만 한다. 이것이 문제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자신의 말만 한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만이 아니라 함께 있던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마 17:5)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이끄는 양들은 자신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다.
내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 예수님께서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데 여기서 확인할 것이 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안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보면서 바로 아래의 말씀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3)
예수님께서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신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자 들인가?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마 7:22)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행하는 증거가 주님을 믿는 자들의 증거일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불법을 행했다고 말씀하셨다.
| 불법을 행하지 않으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불법을 행하지 않는 것일까? 바로 예수님의 양이 되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만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이야기하며 선지자 노릇하는 자들의 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양들에게 하셨던 말씀인지를...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인가 엄청난 증거들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자들도 조심해라!
예수님은 결코 들레지 않으셨다.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오직 십자가와 부활을 위하여 그리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실 때까지 자신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어 자랑하며 다니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럴듯해도 예수님의 음성이 아니면 결코 따라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은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고 해서 무조건 그것이 예수님으로부터 왔다고 믿는 순간 분명 우리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무리에 속해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능력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과 일치하는지 살펴서 점검해보고 믿어도 늦지 않다.
만약 보이는 것을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면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말씀하신 후에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되어 예수님의 뜻과 반대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당신은 알지 않는가?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하시고 (마 16:21-23)
그럼에도 표적 없이는 못 믿겠는가? 그렇다면 그런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마 16:4)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욘 1:17) 우리의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놀라운 일 밖에는(고전 15:3-4) 보여줄 표적이 없다. 그러나 표적을 구하고 믿으려는 자들은 (실제로 예수님의 방법대로 믿지 않겠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스스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사도 바울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그러므로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은 오로지 ‘십자가와 부활’ 밖에는 없다.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안다. 그리고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한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 10:4-5)
어쩌면 많은 이들이 새로운 주장이나 사상에 속는 것이 당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운 것이 아니라서 즉 예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를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당신은 예수님의 음성을 아는가? 그렇다면 증명해 보라. 당신이 예수님의 양이라면 분명히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따르지 않고 도망한다. 물론 예수님의 양인데도 불구하고 미련하여 울타리를 벗어나 선한 목자의 음성을 못 듣는 자들이 있을 수 있지만 걱정하지 마라. 목자가 잃은 양을 찾으러 갈 것이기 때문이다(마 18:12-13).
그러나 자신이 선한 목자를 안다고 하면서 타인의 음성을 듣고 그가 참 목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예수님의 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선한 목자가 울타리 안으로 자신의 양들을 이끌 때, 타인을 따르던 양이 그를 벗어나 참 목자이신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없게 된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라!
그러므로 나와 같은 예수님의 양들이여!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알지 않는가? 목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들리는 소리에 주의 하라! 말씀을 통해서 무언가 새로운 용어들을 만들어내는 자들을 조심하라! 그것은 말씀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타인의 음성이다.
말씀만으로 충분한데 말씀 외에 다른 것을 알아야 말씀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거절하라!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음성이라면 바로 도망가라!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양을 찾고 계시기에 조금만 기다려라! 나와 같은 예수님의 양들이 오직 그분의 음성만을 듣고 따르길 기도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머리말 이 글은 원래 쓰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왕의 재정 부흥회’가 주변 지역 교회에서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강사가 몸담고 있는 단체NCMN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왕의재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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